top of page

브랜드 탐구일지 1부
'브랜딩은 고유한 가치관을 온전한 세계관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김희원, 롯데건설 디자인연구소)

나의 과업, 조경브랜드

건설사에 들어와 브랜드로 글을 쓴다. 글을 고치는 이순간에도 새로운 경영 분야 지식을 습득하고 있기에, 이 글은 꾸준히 배워가며 메꿔가야 할 것이다. 단지, 브랜드를 실무로 익히며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의 응답으로서 이 탐구일지가, 브랜드에 관심을 가졌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건설사에 입사해 공동주택과 복합건축의 수주부터 현장까지 조경 설계를 관리하고 있다. 운 좋게도 브랜드와 상품을 개발하는 부서에 근무하며 브랜딩과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22년 선임들과 조경브랜드 그린바이그루브 BI와 컨텐츠를 개발했고, 24년 주거브랜드 전략을 구상하는 과제에 일원이 되었다. 같은 해 그룹사의 주니어급 디자인리더를 육성하는 ‘Creative Board’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브랜드 전문 선임과 다양한 계열사의 브랜드/디자인/비쥬얼 전략을 경험하고 있다. 어깨너머 지켜본바, 선임들이 브랜딩 차원에서 제시하는 의견은 통상적인 공간설계와 차별화된 결과를 유도해 냈다. 부서 특성 상 건축, 외관, 시스템, 인테리어 등 다공종이 함께 통합상품을 개발하는 일이 많고, 이럴 때면 브랜드 전문 선임은 특정 분야의 특수성을 넘어선 통찰력을 제시하곤 했다. 지금껏 생각지 못했던 브랜드 분야의 잠재력을 알게 되었고, 이를 익히고자 탐구와 업무를 병행하던 중, 월간테라에 글을 적을 기회가 주어졌다. 브랜드를 다뤄내기 위해 명확한 이해와 구체적인 지향을 세워볼 기회였다.

‘진정한 브랜드란 존재하는지, 온전히 만들어낼 방법은 무엇인지, 지금의 시대와 조경에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묻던 질문 중 가장 근본적인 3가지 물음을 골라, 질문별로 3부의 연작을 적어보기로 했다. 1부는 정의를, 2부는 방법을, 3부에서는 의미를 다뤄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브랜드를 논의해야 할 배경을 서술하고, 이론과 체험의 관점으로 브랜드의 개념을 살펴보며, 더 나은 브랜딩을 판별할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안해, 연작의 개념적 틀을 잡는다. 2부에서는 최근 주목하고 있는 브랜드 에이전시의 사례를 살펴보고, 이들이 제공하는 브랜딩 서비스를 방법론의 관점에서 몇 가지 개념으로 구분하여, 이를 기준으로 롯데건설 조경브랜드와 내가 경험했던 브랜딩 및 조경 업무를 살펴볼 것이다. 3부에서는 브랜드가 화려한 판매 기법을 넘어 사회문화적 매체로서 ‘개인의 서사를 상실한 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적인 생산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해 볼 것이다. 독자분들께 작게는 흥미를, 크게는 지식을, 나아가 의미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왜 지금 브랜드인가

최근 다녀온 파리를 떠올리면 모든 공원에 놓인 청록색 벤치와 햇살을 받으러 밖을 나선 파리지앵이 떠오른다. 그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청록색 의자에 앉아 대리석과 윤슬로 빛나는 분수를 바라본다. 더울 때면 네모난 가로수 아래에서 캔버스 같은 잔디밭과 유화로 붓질한 듯 매끈한 가드닝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눈다. 조각배와 축구공을 띄우는 아이들, 사랑과 청춘을 나누는 청년들, 조각상을 그리는 할머니와, 순백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감히 파리의 공원을 브랜드로 상상해 보자면 메인 컬러는 잔디보다 짙고 녹음보다 밝은 청록색일 것이다. 상상한 김에 서브 컬러는 밝은 계열의 석재와 유화 속 구름의 양감을 닮은 아이보리 톤, 파리지앵의 패션과 가드닝 팔레트는 포인트컬러가 아닐까. 색보다 중요했던 것 사람들이 즐기는 바깥 삶의 모습이었으니, 영화 문라이트를 떠올리며 ‘햇살을 맞는 모든 파리지앵은 아름답다.’ 정도로 슬로건을 적어본다. 이처럼 공원에 대해 일관되고 또렷한 심상을 전해준 도시는 많지 않았다. 누구도 나에게 밖을 나오라 선전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파리의 인상을 보았고 그 매력에 동화되어 밖을 나섰고 즐겼고 오랫동안 기억했고 다시 가고 싶어졌다. 인식과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 브랜드라면, 자연과 삶, 삶과 삶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조경에 브랜드를 접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조경은 경험의 주체인 이용자와 관계 맺는 방식에 선진적인 변화를 도입하기 위해 브랜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좁은 식견으로 지켜본바, 사람들은 조경이란 분야와 결과물을 하나의 대상으로 기대한다. 이에 반해 조경은 제도-정책-사업-계획-설계-시공-관리-평가 등 절차를 기준으로 분야별 전문성이 구분되는 경향이 있었다. 문제는 조경과 이용자가 맺어가는 관계가 양방향의 일관된 소통이 아닌 일방적이고 분절된 채 이뤄진다는 점인데, 전문 분야 별로 이용자와 관계 맺는 방식에 편차가 있고, 전문 영역을 명확히 구별하려는 경향 때문으로 판단된다. 어느 때보다 휴머니티가 중시되는 시대인 만큼 ‘커뮤니티 디자인’, ‘환경 심리행태 기반 디자인’, ‘공간 브랜딩’ 등 사람을 중심으로 각 단계를 넘나들려는 실천은 많아지고 있으나, 아직 가까운 분야를 엮어내는 일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여전히 대부분 조경 분야 속 ‘사람’은 희미하게나마 선택적으로 고려 대상이 되는데, 마케팅 단계에서는 구애의 대상(소비자)로서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디자인 단계에서 전문가의 상상 속 단역 배우(사용자)로서 건져졌다 잠기며, 이용 후 평가에서야 매서운 평가자(이용자)로 온전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토록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받아온 이용자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거 같은가. 조경은 사람들과의 경직된 커뮤니케이션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고 이 글은 다음의 명제를 제안하고 검증하며 조경과 브랜드 간의 잠재된 장력을 살피어, 새로운 대안 모색에 동참해 보고자 한다. “브랜드는 조경을 구성하는 전문 분야 간 어색한 관계를 세련되게 엮어내는 하나의 관점으로서, 거의 모든 전문 분야에서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기법을 제공하여, 더 나은 공간과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조경과 브랜드에서 시선을 건설사와 브랜드로 좁혀보자. 상품경쟁이 과열되고 품질이 상향 평준화된 공동주택 시장에서 더 이상 주거브랜드만으로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워졌다. 주거브랜드의 이름 아래 일방적인 방식으로 생산하고 판매해 온 주거 공간이 과거보다 예리해진 소비자의 시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객에게 식별조차 되지 못하는 상품과 분야는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없거나, 그들과 소통조차 할 수 없어 더 이상의 사업성은 없을 것으로 예상해본다. 관계와 경험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 공간만큼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복합적인 경험은 적으며, 주거만큼 사람과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는 공간은 없다. 브랜딩은 한 사람의 존재와 순간, 관계와 만남, 필요와 욕망, 감정과 행위, 하루와 일생에 제일 먼저 주목하고 구조적으로 접근하려 시도하는 전문분야다. 앞으로의 주거시장과 조경에 있어, 브랜딩이 비즈니스적으로 유효하고 인간적인 접근이라 믿어 본 이유다.

브랜드를 정의하기에 앞서 유사 개념을 구분하겠다. 통상적으로 브랜드라면 로고나 심볼 등 시각적이고 언어적인 표현들이 떠오른다. 이런 식별 기능과 시각적 표식은 브랜드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자 구성이었다.(1) 하지만 하나의 분야로 위상을 가지게 된 지금의 브랜드에 이는 좁은 의미의 정의가 되었다. 실무와 학계에서는 브랜드를 점차 넓은 의미로 해석하여 활용하고 있으며(2), 분야 내외에서 제안되는 선진적인 실천들로 브랜드 개념의 외연은 여전히 넓어지고 있다. 이처럼 변화하는 개념을 정립하고 파생 개념의 혼용을 막기 위해서 용어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브랜드(Brand)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분야를 뜻한다. 브랜딩(Branding)은 브랜드 분야의 실천이자 브랜드 관련 행위 일체로 정의하여, 고정되지 않는 개념의 역동성을 포괄한다.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상징표현들은 브랜딩 기법의 하나인 ‘브랜드 아이덴티티(이하 BI, Brand Identity)’에 속한다고 보고 2부에서 구체적으로 다뤄보겠다.


브랜드, 브랜딩, 그것을 나타내는 모든 것

앞선 파리의 일화는 다소 몽상적으로 기술했지만, 이제부터는 현실적인 어조로 정의에 임해보겠다. 감도 높은 서정은 브랜드를 이해함에 필수이지만, 실무에서 만난 브랜드는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익 창출에 기여해야 하는 경영의 한 분야로서 치열한 현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3) 기업 이익의 범위가 비재무적인 범위로 확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브랜드는 냉정한 고객과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에, 단기적 이득보다도 장기적 투자를 선택하길,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실물과 성과로 증명하며, 운영하고 관리해야 하는, 수고롭고 체계적인 일이다. 분야로서 브랜드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인접 분야이자,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 마케팅, 디자인과 비교해 봐야한다.(4) 브랜드의 차별점은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목적에 있다. 구체적인 이해를 돕고자 집합 기호로 비교해 본다. ⓐ 마케팅 ⊃ 브랜딩, ‘매체’를 통해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두 분야 중 마케팅에 브랜딩을 포함해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마케팅 기법이 고객을 즉각적으로 자극하여 단기적인 수익 창출을 실현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면, 브랜드는 고객이 기업활동을 브랜딩으로 인지시키고 긍정적인 인식과 인상을 남기어 고객이 자발적으로 구매 행동을 이뤄내도록 하는 다소 간접적이며 관계 지향적인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 디자인 ⊃ 브랜딩, 고객이 인지할 수 있는 경험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두 분야 중 디자인에 브랜딩을 포함해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디자인이 경험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다르게, 브랜딩은 일관된 상호작용을 위해 디자인들이 필요한 맥락을 고유한 정체성으로 기획하고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세 분야가 고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구분 지으면, 마케팅은 ‘고객을 유도’, 디자인은 ‘고객이 경험’, 브랜딩은 이 둘을 동시에 걸치며 ‘고객과 관계’라는 고유한 전문성을 가진 분야이다.

역동적인 개념인 브랜딩을 정의하기 위해, 학계와 실무의 최신 주장을 살펴 확장하고 있는 개념의 방향성을 4가지 갈래로 구분해보았다. 먼저 ⓐ브랜딩의 상호작용 과정은 정보전달성 식별에서 다목적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고객이 특정 접점에서 정보를 식별하고 상징을 도해하는 시각체험이 위주 였다면, 단일 접점과 기능적 체험을 넘어 가능한 모든 접점과 일련의 여정 속에서, 인상과 심상이라는 다채로운 인지적-감성적-감각적 체험에 까지 관여하는 등 고객경험에 대한 상호작용이 깊어지고 두터워진 것이다.(5) ⓑ브랜딩의 표현 매체도 오프라인 단일 실물 매체에서 온오프라인 융복합 매체로 확장되고 있다. 제품과 같은 오프라인 실물 매체에 그래픽을 표기하는 과거에 비해 기술사회가 고도화되며,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공간 등 다양한 매체를 융복합적으로 넘나들며, 표현 방식과 브랜드자원의 유형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6) ⓒ브랜드의 고객범위는 최종소비자에서 내외부 잠재적 이해관계자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최종소비자이자 이용자만을 고객으로 산정했던 과거와 다르게, 브랜드와 간접적인 접점이나 연관성을 가진 잠재고객, 브랜드에 대한 고객 커뮤니티, 지역공동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자인 임직원, 협력사, 공급자 등 내부고객까지 브랜드 경험과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7) ⓓ브랜드의 지향 가치도 물적 값어치에서 사회문화적 가치로 변화했다. 과거 기능, 품질, 가격 등 값어치의 비교우위가 중요했던 기업은 고객의 정체성이나 관심사에 ‘공명’하는 신념과 문화를 가지고 사회문화적으로 소통하는 일을 중요시하고 있다.(8) 이 같은 변화의 흐름에서도 반복되고 강조되는 브랜딩의 기본은 있었다. 브랜드는 궁극적으로 고객의 경험에 바탕에 두고, 식별성 있고 유의미한 브랜드연상을 일관되게 불러 이르키기 위해, 가치와 실체가 부합하고 정합하는 브랜드경험을 치밀하게 설계하여, 모든 관계자들이 일관된 서비스와 흥미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고(9),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브랜드의 개선과 혁신을 이뤄나가는 것이 었다. 브랜딩이 ‘이상과 현실 간 간극을 줄이려는 의식적 기업 행위’라면(10), 지향하는 이상도, 기업이 의식하고 있는 목적도, 행위의 방법도 넓어지고 있다. 고객은 이토록 다원화된 브랜딩을 다채롭게 경험하며 기업과 관계의 조각을 쌓아가고 있다.

브랜딩이 다루는 실체는 그것의 개념보다도 더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 브랜드는 이론보다 실천에 가까운 분야이기에, 브랜딩을 실천하고 사유하는 주체의 수만큼 실체는 무궁무진하겠다. 이를 이론으로 제한하기 보다는 나의 경험에 빗대어 범위를 어림잡아 보는 게 더 합당할 것이다. 업무 초기, 브랜딩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로고나 심볼 등 시각적이고 언어적인 상징을 연상하며, 브랜드가 시각디자인이나 산업디자인의 영역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키비쥬얼과 매체별 전략을 선정하여 각종 사이니지, 제품, 패키징, 미디어 등에 그래픽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곳곳에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과정 말이다. 그랬기에 브랜딩의 앞으로 과제는 2차원 매체가 포괄할 수 없던 다 감각적 체험과 공간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사례를 경험하며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이 ‘공간’만을 다뤘을 때 전달할 수 없는 또렷한 식별성, 직관적인 스토리텔링, 온오프라인 인터렉티브를 구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브랜딩이 만드는 대상의 범위를 그래픽, 제품, 공간 등으로 한정하여 특정 디자인 분야로 대응 짓는 것으로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브랜딩의 개념과 부합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디자인 분야의 나열이 무의미해졌을 때, 브랜드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세계관이란 단어에 영감을 받았다.(11) 브랜딩이 만들어야 하는 대상은 특정 분야의 결과물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세계관을 명백히 나타내기 위한 모든 것’이 아닐까. 특정 소품이나 공간 그 자체가 브랜딩의 목적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찾아낸 거의 모든 표현 중 하나인 것은 아닐까. 이 ‘표현들’은 사람과 만나서야 비로소, 브랜드의 가치관을 엿볼 인식의 단서이자 브랜드가 제안하는 문화에 참여해 볼 경험의 기회가 되어 ‘소통’으로 거듭나고, 표현과 소통이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 누군가의 습관, 생활방식, 나아가 사회의 문화가 될 때, 브랜드는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브랜딩의 실체는 브랜드를 현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그래픽도, 퍼니처도, 미디어도, 공간과 소리와 향마저도 브랜딩이 만들어야 할 감각이자, 소재이며, 콘텐츠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정한 브랜드는 존재하는가

1부의 끝으로 ‘진정한 브랜드는 존재하는가?’의 질문에 답해보겠다. 이 질문은 브랜딩의 가치 판단기준이 될 브랜드의 이데아(원형)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많은 글에서 브랜드를 선택한 기업의 생로병사를 분석하여 더 나은 브랜딩과 더 나쁜 브랜딩을 구분하고 있다. 이 글에서도 개념을 정립해 가며 앞으로의 시대에 고객과 관계 맺기 더 나은 방법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진리와 같은 브랜딩은 없고, 장기적인 성과로 검증되어야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더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브랜딩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이 글에 한정해 다소 거칠겠지만, 더 나은 브랜딩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안해 보겠다. 이는 2부 브랜딩의 방법을 다룰 때, 브랜드 에이전시의 여러 실천을 선별하는 틀이 될 것이고, 브랜딩을 다뤄내야 하는 실무의 입장에서도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좋은 브랜딩은 다음의 3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① 브랜딩은 내외부 고객과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전략적 행위여야 한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목적인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어긋나서는 안된다. 고객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고객과 잠재된 이해관계자를 가능한 고려해야 한다. 전략의 범위는 단순 디자인이 아니라 사업 구도, 정치적 판단 등 목적 달성에 필요한 모든 궁리여야 한다. ② 브랜딩은 브랜드에 필요한 모든 종류의 표현을 염두에 두되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 구현한 고객경험이어야 한다. 모든 전략적 판단과 표현의 최종 목표는 브랜드 경험이어야 한다. 표현 방식을 특정 매체나 고객 접점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매체의 가능성과 그것 간의 총체적인 조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무수한 매체 중에서도 내외부 고객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선별해야 한다. ③ 브랜딩은 고객과의 일관된 소통을 전제하되 행보에는 의외성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는 가능한 모든 고객 여정과 고객 접점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일관되게 드러내야 한다. 이는 명확한 신념과 원칙이 바로 서 내부 의사결정이 일관될 때 가능하다. 외부고객과는 상호작용은 언제나 호기심과 기대와 동경을 불러일으킬 의외성과 흥미로움을 동반해야 한다. 소통은 단발적이거나 단기적인 콘텐츠 개발이 아닌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발전시킬 모니터링, 평가 등의 건설적인 상호작용으로 바라봐야한다.

브랜드는 무한한 실천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브랜딩의 기준은 이보다도 다양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브랜드가 더 이상 기업과 고객을 잇는 단순한 매개체가 아니며, 사회의 문화 중 하나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의를 마치니 이제 조경브랜드가 조경의 관점만으로 구현되어서는 안 되며, 브랜드를 특정 디자인의 수단으로 한정 지을 때 불편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업의 모든 행위는 브랜딩일 순 없지만 기업의 모든 행위는 브랜딩이 될 수 있다. 브랜딩은 고유한 가치관을 온전한 세계관으로 만들어가는 일이다. 다음 달에 계속

(1) 마커스 콜린스는 「문화의 중력」에서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의 기업 브랜드 중 하나는 1770년 영국 도자기 회사인 웨지우드라 주장했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특정 물건(도자기)을 특정 주체(기업)의 소유물로 식별하고 구별하기 위해 시각적인 상징(기업명)을 표시한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브랜드는 ‘사업자가 자기 상품에 대하여, 경쟁업체의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호, 문자, 도형 따위의 일정한 표지’로 정의하고 있다.
(2) 한은경, 김유경은 「브랜드관리」에서 정확한 사실로 브랜드 개념의 역사와 어원적 기원이 알려진 바는 없으나, 과거 실무나 학계에서 협의적으로 정의해온 브랜드가 현대에는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되고 정의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브랜드의 어원을 ‘불에 달구어 지지다, 낙인찍는다’ 등 고대 노르웨이어 ‘브란드르(brandr)’에서 유래된 것으로 파악한다.
(3) 브랜드가 수익에 기여하는 예시로 충성도란 개념이 있다. 충성도란 인지도, 만족도, 신뢰도를 넘어 기업활동과 기업 그 자체를 강력하게 믿고 기대하는 관계의 표현이자, 무관심이나 부정적 관계 대비 투입 자본은 현저히 적고 수익은 높을 수밖에 없는 사업 구도이기도 하다.
(4) 실무적 브랜드의 개념은 마케팅에서 시작되었고, 브랜드는 디자인과 마케팅 분야를 아우는 개념이자 분야가 되었으며, 디자인은 브랜드 개념을 적극 빌려와 마케팅 기법을 디자인에 도입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처럼 세 분야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란 어려운 일이다.
(5) 국내 마케팅 석학 홍성태는「나음보다 다름」에서 현 시대 ‘브랜딩의 핵심기술’은 사소하더라도 인식의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일이고, 이를 실질적인 경험으로 증명해 가며 새롭고 경쟁력 있는 문화를 창출할 능력이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브랜딩의 궁극적인 목표라 말한다.
(6) 필립 코틀러는「마켓6.0」에서 브랜드 전략이 과거 제품 중심에서, 가치 및 스토리 중심을 거쳐,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몰입형 고객 경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7) 대런 콜먼은「브랜드 경험 디자인 바이블」에서 고객보다 지역공동체, 공급사, 직원 등까지 포괄한 이해관계자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고객경험이란 표현도 브랜드가 관계 맺어야 할 이해관계자 집단을 제한하는 관점이 될 수 있어, 브랜드경험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8)브랜드의 가치지향 변화를 잘 설명하는 학자로는 마커스 콜린스가 있다. 그는 「문화의 중력」에서 문화와 브랜드의 역학을 분석하며 과거 <법적 마크>로서 브랜드가 지속적인 구매에 따라 신뢰 그 자체가 되고(신뢰 마크), 신뢰는 소비자와 기업 간의 감정적 관계로 발전하여 종종 비합리적인 소비를 이끌게 되었으며(러브 마크), 현재는 기업의 신념과 자신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의식적 무의식적 소비가 일어나는 등 문화 그 자체가 되었다고 (정체성 마크) 주장한다.
(9) 유명 브랜드 인큐베이터 에밀리 에이워드는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에서 ‘브랜드의 생명력’은 모든 고객 접점에서 일관된 소통을 이어가는 한편 의외성 있는 행보를 보일 때 소비자가 가지는 호기심과 동경에 있다고 강조했다.
(10) 브랜드 에이전시 더 워터멜론은 「작지만 큰 브랜드」에서 브랜딩을 <기업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줄여가는 의식적 행위>라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11) 현대백화점 브랜드전략팀장 박이랑은 「월간디자인 2024.06」 인터뷰에서 탁월한 브랜드의 예시로 “무인양품은 브랜드의 가치관을 잘 유지하면서도 세계관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세계관이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 더 나아가 한 나라의 소프트 파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걸 떠올리면 가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라 고 답했다.


참고문헌
1.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24.06 : 크레이티브가 디렉터가 뭐길래」, 디자인편집부, 2024
2. 대먼 콜런,「브랜드 경험 디자인 바이블 :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브랜딩 전략」, 유엑스리뷰, 2020
3.마커스 콜린스, 「문화의 중력」, 시그마북스, 2024
4.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 2021
5.우승우·차상우·한재호·엄채은, 「작지만 큰 브랜드」, 북스톤, 2023
6.필립 코틀러· 허마원 카타자야·**이완 세티아완,** 「필립 코틀러 마켓 6.0」, 더퀘스트, 2024
7.한은경·김유경, 「브랜드관리」, 사단법인 브랜드마케팅협회, 2015
8.홍성태·조수용, 「나음보다 다름」, 북스톤, 2018

Copyright © 2024. STUDIOS terra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