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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조경, 그리고 테라 이야기

발끝만 적셔본 자의 각오 (신희정, 한국농어촌공사 지역개발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020년을 조용히 밀어내고 어느새 다가온 새해처럼 애써 무시하고 싶던 손님이 기다렸단 듯이 내게 다가왔다.

 

2021년 1월 월간테라.

별다른 의미 없이 정해진 순번이겠지만, 과연 내가 2021년 새해 첫 에세이를 쓸 자격이 있는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차저차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에세이를 포기한다고 해볼까. 작년 신년모임에서 ‘스튜디오 테라는 나의 자양분이다.’라는 낯간지러운 발언까지 한 입장으로써 궁색하게 회피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준비를 한다. 그동안 Ctrl+C, Ctrl+V에 가까운 기안만 작성하며 사회생활을 보냈기에 글다운 글을 써본 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우선, 스튜디오 테라 홈페이지에 들어 가봤다. 지난 월간테라 한 편, 한 편씩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이내 나는 더욱더 당혹스러워졌다. ‘다들 무서운 사람들이었네...’ 내 머릿속의 친숙하던 그들의 모습과 달리 에세이 속 조경에 대한 태도에서 진중함이 느껴졌다. 글을 한편씩 읽어 내릴수록 내가 염두하고 있었던 주제들이 한없이 얄팍하게 여겨졌다. 그들과 달리 조경에 대한 경험도, 철학도 부족한 내가 쓸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꼴과 같은 심정이었을까. 나의 결론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내가 논하기엔 아쉬울 것 같으니 더욱 가벼워져 보기로 했다. 그래서 월간테라에게 푸념이라도 하듯 나와 조경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수다 떨어보려고 한다.

 

현재 나는 농업과 관련된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 농업생산기반 위주 토목공사 업무를 맡고 있다. 토목이란 ㅌ자도 관심 없던 내가 회사의 인사구조의 허점으로 조경인의 길이 아닌 토목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리 크지 않는 소규모 공사를 담당하고 있고, 반복적인 공사감독 업무체계와 주변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업에 대해 논하기에 짧디짧은 초보 공사감독이지만 토목은 확실한 공법과 공정에 의해 진행되는 기술적인 업무라고 생각된다. 기반 구축을 위한 기술에 집중되기 때문에 조경과 달리 경관이라든지 사용자라든지 조경학도였던 내가 주요하게 여겼던 요소들은 지금의 현업에서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계산적인 구조에 의해 돌아가는 토목 업무는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벌써 3년차임에도 일말의 관심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대학원 연구실에서 경험했던 프로젝트가 떠오르고, 과거의 그 순간들이 청춘영화처럼 반짝반짝 미화되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사실 처음부터 조경에 대해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경영학과에서 조경학과로 편입을 하였고, ‘하다 보면 내 길이 보이겠지’라는 철없는 생각으로 얼토당토 않은 결정이었지만 의외로 편입 후 답사 활동이나 공간 계획과 같은 조경학과의 커리큘럼이 나의 성향과 잘 맞았으며 특히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운이 좋았던 건지 조경대전에서 기대 이상의 수상을 획득하고, 무턱대고 걷던 길이 최적의 길이었다는 행복한 착각을 하며 대학원을 진학하였다. 그렇게 스튜디오 테라와 만나게 되었다.

 

처음 상경한 시골쥐에게 서울이 신세계처럼 보였듯이 스튜디오 테라의 커리큘럼은 지방대 조경학도인 나에게 신세계로 다가왔다. 특히 조경설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이나 미학적 지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스튜디오 테라에서 교수님께 배운 가르침과 선후배분들과 함께 한 경험들은 단순히 조경이라는 학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현업에서 조경을 하지 못하는 상실감과 결국 내 스스로 조경이란 영역에 겨우 발끝만 살짝 적신 사람으로 치부하며 미완의 전공자라는 사실이 매우 나를 위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월간테라를 작성하면서 내가 얼마나 내 한계를 가두고, 조경이라는 범위에 대해서 편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튜디오 테라에서의 배움과 월간테라 첫 편의 주제처럼 조경인으로써 조경의 한계를 한정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현재 내가 하는 일이 조경이라는 영역에서 더욱 다양하게 확장된 업무라고 생각하여 전문가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매진해보려고 한다.

 

역시, 스튜디오 테라는 나의 자양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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