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 조경은 과학인가, 예술인가?

​

대학교 1학년 조경학 수업에서 다뤘던 에세이 주제였다. 학생들은 과학, 예술 둘 중 하나를 정하여 조경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했는데, 그 당시 나는 설계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질문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단번에 ‘조경은 예술적 행위지만, 과학, 예술 모두를 다루는 종합 학문이다’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에세이를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건설사에 다니면서 시공, 설계, 관리 등 조경과 관련된 업무를 경험하게 된 지금에서야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건설사에서의 첫 5년은 직접 설계를 하기보다는 감독관에 가까웠다. 설계사가 해온 설계에 대해 실제 시공이 가능한지, 법적 사항에 위반은 되지 않았지 등을 검토하며, ‘디자인’보다는 ‘기술’의 측면에서 도면을 해석했다. 업무를 하면서 조경 설계에 대해 관점이 학생 때와는 달라진 것이다. 즉, 단순히 배치도 상의 아름다운 선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 기반이 바탕이 된 기술 측면에서 조경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

Q2 : 과학적 분석 기반의 조경 설계는 무엇일까?

​

건설사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설계, 시공, 관리의 조경 라이프사이클을 모두 다룬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최근 환경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조경적 측면에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열섬현상과 미세먼지이다. 이 이슈들은 작년 조경의 날 행사의 축사에서도 언급되었던 만큼 옥외환경을 다루는 조경에서는 가장 크리티컬한 요소로서, 이용자의 쾌적성을 증대시키고 외부 활동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할 문제였다.

 

내가 시공을 담당하였던 ‘석관동 A현장’은 이 두 가지 문제를 조경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설계, 시공의 측면에서 고민한 테스트베드였다. 계획 초기부터 바람길, 음영 등 미기후 분석을 바탕으로 수경 공간과 잔디광장 등 주요 조경 공간을 배치하였다. 또한, 실시간 기후 센싱을 통해 자동으로 작동하는 쿨미스트 파고라를 개발, 시공, 운영하여 실제로 온도 저감 효과가 있는지 약 1년간 모니터링하였다. 이러한 기술 개발과 시험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적 분석이 밑바탕에 깔린 설계가 필요했다. 해당 현장에서 수행한 과학적 분석 방법은 BIM과 CFD(컴퓨터 유체 역학; Computational Fluid Dynamics)를 활용한 ‘옥외 환경 분석’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쿨미스트 파고라’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최적의 쿨미스트 파고라의 위치를 선정하기 위해 먼저 주변 현황 및 해당 시설물을 Revit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3D 모델링 작업을 하고 향에 맞게 배치한다. 그리고 CFD 프로그램으로 불러와 대상지의 미기후 조건과 동일하게 풍속, 온도 등의 조건을 설정하고, 미스트가 분사되는 것을 고려하여 노즐 위치에 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설정값을 넣어 시뮬레이션을 돌린다.(본래 실제와 동일하게 실험하기 위해서는 미스트가 분사되는 상황을 설정해야 하나, 필자가 사용하는 CFD 프로그램에서는 해당 설정이 불가하여, 바람이 나오는 것처럼 임의 설정이 필요하다. 사실 이 부분이 필자의 옥외 환경 분석의 한계점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스트 분사 시 파고라 내 온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결괏값을 확인하고, 여러 차례의 분석을 통해 최적의 파고라의 방향과 위치를 계획하는 것이다. 그리고 추후 시공을 통해 분석 결과와 실제 모니터링 데이터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확인 과정을 갖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시설물 설계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저감을 위하여 바람길을 고려한 식재 배식 등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

 

Q3 : 과학적 분석 기반 설계가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

첫 번째, 분석 데이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조경 설계의 설득력이 높아진다. 과거 조경 설계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미래의 조경은 공간의 심미성뿐만 아니라 기능적 측면도 고려하여 실제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 단계에서의 고려가 중요하게 될 것이다. 과학적 분석은 여러 차례의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조경 설계가 미기후를 얼마나 개선하는지 실질적인 수치를 보여줌으로써, 해당 공간 설계에 대한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으며, 기후변화 및 도시문제를 해결하데 있어 조경의 역할이 커지는데 기여할 수 있다.

​

두 번째, 조경 분야의 스마트 기술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오면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기술, 드론, 가상현실(AR) 등의 신기술이 각 분야에 접목되고, 조경업에서도 스마트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높은 관심에 비해 실제 조경 현업에서 사용되는 스마트 기술은 광촉매 기술을 접목한 미세먼지 분해 블록포장과 같이 단편적인 신자재 개발에 치중되어 있다. 우리가 다루는 식물,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통합 계획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과학적 분석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활용하여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세 번째, 녹색건축인증 등 조경 관련 법적·인증 기준의 불합리성에 대해 개선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간혹 실무를 하다 보면, 온갖 법적·인증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녹지 면적에 비해 다량의 나무를 군식하거나 설계에 반영된 옥상녹화 수종에 비해 깊은 토심이 반영되어 건축 슬라브에 구조적 문제가 생기는 등 과설계·시공을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의 조경 관련 기준들이 단순 면적과 수량을 바탕으로 제정되어 생기는 문제라고 느꼈다. 만약 이러한 기준들이 과학적 분석 기반으로 제정이 된다면, 우리는 각각의 대상지 특성에 맞게 다양한 녹지 공간을 기능에 맞춰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 효과 또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나에게 과학적 분석을 통한 조경 설계는 방법론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건설사에서의 조경 설계가로서 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며, 나아가서는 조경 분야가 시대의 변화 흐름에 맞춰 선제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조경에 대해 나만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Answer 1.

조경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예술적 학문으로서,

미래 도시문제 및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